노르웨이 : 스포츠 철학
노르웨이 : 평등주의가 평창올림픽에서 대성공을 낳았다
평창올림픽에서 노르웨이가 놀라운 성적을 낼 수 있게 한 철학이 약간, 음, 구식인 건 아닌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노르웨이 올림픽 위원회의 톰 티베트 위원장이 웃으며 답했다.
“맞아요! 구식이 최고에요!”
노르웨이는 메달을 땄을 때의 짜릿한 순간을 위해 일반인들이 하지 않는 스포츠에 수백억을 쏟아 붓지는 않는다. 그리고 풀뿌리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가 직결돼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말을 한다. 노르웨이의 성공에서 동네 스포츠 클럽들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은 만인을 위한 스포츠입니다.”
티베트 위원장이 말을 이어 갔다. “(선수가) 12살보다 어리다면 그에게 스포츠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나이대에서는 승자가 누군지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들이 11,000개의 동네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도록 노력합니다. 현재 93%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런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습니다. 어릴 때 운동을 즐길수록 나중에 엘리트 팀들이 발굴할 인재풀이 커지니까요. 올림픽 메달을 땄던 선수들 모두가 동네 스포츠 클럽 출신입니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있으면 우리는 그들을 엘리트 스포츠 센터인 올림피아토펜(Olympiatoppen)으로 데려옵니다. 최첨단 스포츠 과학이 적용되는 건 이때부터입니다.”
이 방식은 효과적, 그 이상의 이상이다. 이번 동계 올림픽을 3일 남겨놓고 520만 인구의 노르웨이는 35개의 메달을 땄다. 독일이 25개로, 캐나다가 24개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게 있다. 노르웨이 스포츠 연맹의 한해 예산이 하계와 동계 스포츠를 통틀어 1370만 파운드에 불과하다. 이것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를 알기 위해 영국의 예산을 보자. 영국은 엘리트 올림픽 종목 스포츠에만 일 년에 무려 1억 375만 파운드를 쏟아 붓고 그 중 800만 파운드를 동계 스포츠에 쓴다.
“영국이 카누와 조정에만 쓰는 액수 정도가 우리의 전체 예산입니다.”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의 크리스틴 클로스터 에이겐 부위원장의 말이었다. 그녀는 영국의 성공이 인상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노르웨이의 시스템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노르웨이의 운동선수들은 정부의 지원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목수이거나 배관공, 선생님과 학생들입니다.”
평창올림픽 전에 영국의 컬링 선수들은 560만 파운드를 받은 반면, 동메달을 딸 것으로 보이는 노르웨이의 혼성 컬링조는 돈이 필요해서 이베이에 자기의 운동기구 세트를 내놨다. 하지만 노르웨이 선수들은 부족한 돈을 우정(camaraderie, 혹은 동료애)으로 메운다. 그 동료애는 “싸가지 없는 사람은 안 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더욱 강화됐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 싸가지가 없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런 사람은 우리 팀에 있을 수 없다”며 평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알파인 스키의 쉐틸 얀스루드 선수가 설명했다.
동계 올림픽팀이 비경기 시즌 때 올림피아토펜에서 함께 훈련하고, 금요일마다 팀원들과 함께 타코를 먹으러 간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1992년 올림픽에서 노르웨이 대표선수였던 몰텐 아센이 밝혔듯, 선수들간의 끈끈함이 대단해서 최고의 선수들이 더 가난한 선수들의 트레이닝 캠프 경비를 대신 부담하는 일도 흔하다.
아센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 태도가 우리의 스포츠 시스템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 우리는 영국처럼 스켈레톤이나 봅슬레이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패러독스죠. 노르웨이는 매우 부유한 국가이지만 사회주의적으로 일을 풀어 나갑니다. 성공은 노력과 협력에서 나와야 합니다.”
또 다른 노르웨이 대표선수인 리프 크리스챤 네스트볼트-하우겐은 팀원들이 일년에 250일 정도동안 같은 방을 쓸 때도 있다고 했다.“오성급 호텔에 묵을 때는 거의 없죠. 혼자 방을 쓰는 것도 홀수의 선수들이 이동할 경우에만 이뤄질 정도로 아주 희귀한 일입니다. 어떤 때는 호텔방에 더블침대가 2개 있거나 퀸침대가 1개 있죠. 그럴 땐 그냥 한 침대에 두명씩 잡니다. 우리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노르웨이의 동계올림픽 성공 뒤에 노르웨이의 스포츠 시스템과 동료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이 풍부한 나라인 것이 물론 핵심적이다.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와 바이애슬론에 노르웨이의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참여한다는 점도 큰 몫을 한다.
하지만 평창에서는 노르웨이가 이외의 종목에서도 메달을 획득했다. 외국인들을 발탁한 것도 거기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20년만에 호바르 로렌첸 선수가 메달을 딴 후, 그는 캐나다 출신의 코치 제레미 워더스푼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편 스키 점프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알렉산더 스토클이 노르웨이 팀을 크게 발전시켰다고 평가 받는다. 기술도 제몫을 했다. 노르웨이는 몇 년전 “빅 글라이딩 프로젝트”를 시작해 노르웨이 선수들의 스키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 프로젝트 관련자들은 여기에 든 돈이 영국의 비밀 프로젝트들에 든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평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딴 마틴 존스러드 선드비가 2016년 천식약 과다 복용으로 출전금지 징계를 받자 노르웨이의 스포츠계는 근간까지 흔들렸다. 노르웨이 스키연맹은 수사에 착수했고 선수들이 스키에 왁스칠을 하는 트레일러에 천식약이 공짜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르웨이의 NRK 방송국이 노르웨이 의사들이 이번 동계올림픽에 가져가는 천식약의 목록을 발표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핀란드가 들고 가는 약보다 무려 10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VG’지 기자 요스타인 오버릭은 “노르웨이 팀이 복용하는 약물이 금지되는 수준에 너무 가깝습니다. 추운 날씨에 바람이 불면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불법적인 약물 복용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문제 제기가 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며 우려를 표했다. 클로스터 에이겐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그런 약품은 천식을 가진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만 한다고 주장한다.
“노르웨이에 천식약이 과다 복용되고 있다고 말할 경쟁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의료진은 경험도 많고 어떤 양이 허용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치료를 위한 복용 예외조치를 신청하지 않아 2개월간 출전금지된 선수는 한 명 있었습니다. 그가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노르웨이의 스포츠 당국은 “고도 텐트(altitude tents)”와 관련해서는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지구력이 요구되는 종목의 선수들이 적혈구 수치를 자연스럽게 높이기 위해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르웨이에서는 허용하지 않습니다.”
트웰데가 말했다. “우리는 노우(No)라고 말합니다. 높은 고도에서 훈련한 덕을 보고 싶으면 산을 올라야 합니다.”
노르웨이의 총체적 접근방식의 장점은 지난 수요일 크로스컨트리에서 요하네스 클라에보가 그의 세 번째 금메달을 땄을 때 또 한번 부각됐다. 클라에보는 노르웨이의 스포츠 시스템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10대 중반이 돼서야 제대로 자라기 시작한 작은 아이였다. 하지만 그 때 이미 그는 스포츠를 사랑하고 있었고, 동네 클럽 시스템에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 코치진이 그의 성적 향상을 재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에는 노르웨이에 관한 이런 사례가 수없이 많다. “우리의 목표는 10개의 금메달과 총 30개의 메달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엄청난 일이 일어난거죠.” 트웰데가 놀라움에 고개를 저으며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노르웨이는 평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1개를 땄다/편집자주)
“우리의 스포츠 모델과 우리의 사고방식의 장점을 보여준 아주 좋은 일이죠. 우리의 성과는 멋진 꿈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http://www.vop.co.kr/A000012605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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