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는 왜 히딩크를 무시할까
축구협회는 왜 히딩크를 무시할까
조직논리에 순응하지 않은 죄?
히딩크 이슈로 축구협회가 흔들리고 있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의 거짓말 논란이 사태에 불을 질렀다. 히딩크의 한국 대표팀 감독설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상당히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며 아무런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네덜란드에서 직접 한국 대표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후, 김호곤 부회장이 지난 6월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을 바꾸면서 축구팬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다.
김 부회장의 해명도 일을 키웠다. 당시엔 자신이 기술위원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식으로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부회장이었다. 기술위원장이 아니었다는 해명에 ‘아, 그렇다면 그땐 야인이었나?’라고 받아들였던 네티즌도 그가 당시 부회장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마치 희롱당한 것과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히딩크 측의 제안 형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해명도 나왔다. 정식 제안이 아니라 히딩크 재단 쪽 인사가 카톡 메시지를 ‘넌지시’ 건넨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도 네티즌을 분노하게 했다. 우리가 지금 히딩크의 정식 제안을 앉아서 기다릴 처지냐는 것이다. 히딩크 쪽에서 의사를 비췄으면 적극적으로 진의를 타진하고 공식적으로 타당성을 논의했어야지, 정식 제안 아니라서 그냥 뒀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여론이다.
축구협회 쪽에선 히딩크를 쓰기엔 재정부담이 너무 크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히딩크 쪽에서 ‘연봉 1달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러니 축구협회를 보는 시선이 더 따가워졌다. 적극적으로 접촉도 안 해보고 돈 문제를 운운했느냐는 것이다. 만약 돈을 낮춰주겠다는 말까지 듣고도 대중에게 돈 문제를 핑계로 댔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물론 히딩크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하고 싶으면 공식적으로 정중하게 제안할 일이지 관계자를 통해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든지, 외국에서 기자들에게 말을 흘리는 건 이상하다. 그래서 히딩크의 진정성과 선의를 의심하는 시각도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히딩크가 한국 대표팀을 맡겠다는 의사 그 자체다. 한국 축구를 위한 진정성이나 선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히딩크가 이렇게 애매한 행보를 보인 이유를 추정해보면, 아마도 그는 한국이 자신을 모셔가는 모양새를 취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히딩크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지도자 커리어에 화려한 정점을 찍으며 마무리하고픈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현재 다른 나라 대표팀 감독은 여의치 않고, 그래서 한국 대표팀을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한국 축구의 발전이 아니라, 한국의 ‘월드컵 본선 대표팀’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보낸 메시지에서도 예선 감독은 일단 아무나 ‘땜빵’하라는 식이었다.
이런 히딩크의 태도에 축구협회가 모욕감을 느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히딩크와 우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히딩크와 우리는 동시에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을 원한다. 그렇다면 축구협회 입장에서 히딩크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히딩크 감독 부임설이 처음 나왔을 때 김호곤 부회장이 보인 감정적인 반응도 이상하다.
그래서 축구협회에 의혹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다. 단지 기술적으로 히딩크에게 감독으로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히딩크라는 사람 자체를 축구협회가 상당히 싫어해서 아예 배제해왔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히딩크는 2002년 당시 격식 파괴, 관습 파괴, 기득권 파괴의 아이콘이었다. 연줄로 움직이는 한국 축구의 판을 완전히 뒤흔들었고, 그래서 히딩크 리더십 열풍이 일어났었다. 단순히 월드컵 성적 잘 나왔다고 일어난 열풍이 아니었다. 연줄로 엮인 우리의 썩은 조직문화를 일소해 줄 외부의 충격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한 외부의 충격에 대비되는 곳으로 인식된 게 바로 축구협회였다. 이번에 축구협회가 히딩크를 상당히 싫어하는 것처럼 비치자 바로 과거의 대립구도가 소환됐다. ‘구태 기득권 축구협회’와 ‘새바람 히딩크’다. 이래서 이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비화했다.
우리 사회에선 조직의 이해관계가 개인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는 영웅인데도 조직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매장당했다. 심지어 상관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이 신고를 해도 조직에 누를 끼쳤다고 왕따당했다. 조직의 관행을 무시하고 원칙대로 일처리를 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찍혀 소외당하거나 잘렸다.
축구협회도 바로 그래서 히딩크를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축구협회의 조직논리에 순응하지 않은 죄라는 것이다. 이런 의혹이 생길수록 구태를 깨기 위해 히딩크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단순히 축구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조직논리, 리더십, 기득권질서에 대한 개혁 요구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 리더십 열풍이 일어나면서, 관련 연구 및 심포지움이나 강연행사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사회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어나는 축구협회 논란도 과거의 프레임에서 한 치도 전진하지 못했다. 도대체 우리는 21세기에 무얼 했단 말인가?
출처 : http://sports.news.nate.com/view/20170918n03177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