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 김남준

자료2017. 11. 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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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활짝 핀 아름다운 국화가 보고 싶다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어야 합니다. 그 피나는 사연이 싫은 사람은 자신의 국화가 만개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입니다. 큰 문제 앞에서의 새벽기도는 그런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p15

2. 즉,만나의 사건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본 후에 경험한 사건이었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은 요단강이 마르는 기적을 본 후에 일어나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두 사건은 모두 인간이 무엇을 보탠 것이 아니라 하나님 홀로 하셨다는 점에서 아주 유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건은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사건에서는 믿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을 했고 만나가 내리는 사건에서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적이 작용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믿었기 때문에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땅을 얻었다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4. 그 약속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그것은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싸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약속받은 천국의 유업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끊임없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5. 그 속에 성화를 위한 치열한 싸움이 있음을 깨닫고는 아예 일찌감치 두 손 들고 참된 그리스도인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가나안 땅이 크고 탐스런 과일들이 주렁 주렁 열려 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채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어서 언제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곳이기를 기대했던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19)

6.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들이 가지는 영적 권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보기에는 보잘것 없는 무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위엄과 권위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21)

7.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무릎 꿇게 만드는 위대한 힘은 오직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22)

8.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심판하십니다. 로마의 타락한 도시품페이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묻어 버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23)

9. 사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슨 문명이나 문화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광야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번영한 가나안에서 만나게 될 문화가 자칫하면 이제껏 믿어 온 그들 자신의 종교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25)

10. 우선 첫 번째 요인은 하나님의 약소입니다. 두 번째 요인은 그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완전한 순종입니다. 믿기는 하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지적인 동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순종이 믿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29)

11. 그들의 마음에는 “이렇게 성을 돌기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분명히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루도 어김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으며, 결국 7일째 하나님께서 위대한 방법으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6일간을 수고하게 하시고 7일째에 기적을 이루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보고 싶으셨기 때문이니다. (31)

12.6일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영적인 측면에서는 하루 하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으로 인해 금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신앙의 세계에서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것이 귀하고 값질수록 획득하는 과정은 길고 어렵습니다. 깊은 기도의 세계를 갖는 것도, 말씀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갖는 것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 가우넫 거하는 것도, 거룩한 tkfamdf 살아가는 것도 모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고 힘든 선한 싸움의 과정을 통해 이룩되는 것입니다. (32)

13. 사람의 시선은 결과만을 주목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과정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언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먼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 시켜야 합니다. 헌신의 과정 없이 결과만을 탐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게으름이요,악함입니다. 그것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감나무 밑에 누워서 입을 벌리고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33)

14. 그런데 문제는 과정을 지나는 우리의 태도가 결과를 바라는 기대만큼 열렬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33)

15.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기도의 응답은 바라면서도 늘 그런 인고의 과정을 견디지 못해 합닏.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은 첫째 날에서 여섯째 날까지는 참여하고 싶지 않고, 7일째 그것도 일곱바퀴를 다 돌고 났을 때 양각 나팔 소리가 울리는 바로 그 순간에만 참여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는 눈으로 볼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믿음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3)

16.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강한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게 됩니다. “왜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금방 응답하시면서 내 기도에는 묵묵무답이십니까” 하고 불평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 응답의 순간만을 놓고 본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응답의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면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34)

17. 활짝 핀 아름다운 국화가 보고 싶다면 봄부터 정성껏 그 꼬치 피기가지 키워 나가야 합니다. (35)

새벽에 무너지다.

18. 첫날부터 마지막 일곱째 날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돈 것은 다른 시간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침 일찍이, 바로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19. 우리에게도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 무너지지 않은 큰 성이 있습니다. 너무나 크고 높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공격하기보다는 숙명처럼 그 아래서 비굴하게 살아가는 성이 있습니다. (35)

20.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리고 성의 교훈을 통해 그 난공불락의 성을 허무는 방법을 우리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성을 무너뜨리고 싶다면 새벽에 나가 믿음으로 그 성을 도십시오.

여러분에게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 여러분 자신일수도 있고, 구원받지 못한 여러분의 가족일 수도 있으며, 벽에 부딪힌 사업상의 위기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건강이나 학업 성취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거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껏 극복할수 없었던 상황을 그복하게 하시고, 넘을 수 없던 벽을 넘게 하시는 위대한 하나니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6)

승리의 하나님 확실한 패배 앞에서 (히스기야)21. 히스기야가 승리의 새벽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절망의 밤을 기도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혹시 절망의 시기를 지나고 계십니까? 우리 앞에 던져지는 고통과 절망들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격려일 뿐입니다. (41)

22. 이 국제화 정책은 앗수르를 비롯한 이방 지역의 이주민들을 불러들여 수도인 사마리아에서 살게 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외부로 강제 이주시켜 혼혈을 조장하였습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마리아를 부정한 땅으로 여긴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43)

23. 도저히 해결 방안이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 한순간에 역전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느낀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사는 삶의 우월함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47)

24. 저도 짧은 인생을 사는데, 왜 사는 동안 이렇게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지 참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고생스럽게 인생을 살아온 것에 대해, 그리고 지금도 고생스럽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쓰라림은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하나님만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토앻 내린 하나님의 결론은 절망 속에서 두려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희망의 한줄기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수 없다는 것입니다.

25.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51)

26. 진정한 안전을 위해서는 단지 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나 여리고 성 같은 경우에도 결코 성이 약하거나 높지 않았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고자 작성하셨기에 무너졌습니다. 성이 안전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 자체의 견고함도 무시할수 없는 문제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27. 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성이 요동치 않고 서 있기 위해서는 그 성중에 여호와 하나님게서 함께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8.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 아무리 대단한 방책이라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52)

29.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은 그 자체로 아무리 훌륭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개입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붙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53)

30. 때로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인간의 몸부림이 그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방법으론느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56)

31. 그런 경우의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하늘을 열고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뿐입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몇 주 동안 수십 대의 헬기가 물을 퍼 날라도 잡을 수 없던 불길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55)

32.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원한다면,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완전한 도우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대적들이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완벽하게 진멸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56)

33. 그러한 위대한 광경이 보고 싶다면 하나님께 그 문제를 의뢰하십시오. 그러한 도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비롯됩니다. (56)

34. 진정한 기도의 자세-기도하던 그 순간의 히스기야를 상상해 보십시오.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매달리며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할 때 그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던 순간만큼은 그는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하였습니다. (58)

35. 기적의 새벽을 기다리며-우리 앞에 던져지는 고통과 절망들은 기도하란느 하나님의 경고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절망과 고통을 가지고 기도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저 주어진 절망에 순응하며 고통받으며 살아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절망의 밤을 히스기야처럼 기도로 보낸 사람에게만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의 밤을 원망과 슬픔과 무기력한 태만으로 보낸 사람에게도 새벽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두 새벽은 다릅니다. (60)

36-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에게는 시련이 은혜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롯에게 있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엄청난 환난이었지만, 또한 하나님의 독점적인 은혜를 경험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것은 신앙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사느냐입니다. (67)

36. 그의 첫 번째 잘못은 아브라함의 사랑의 배려에 사랑으로 화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68)

37. 두 번째 그의 잘못은 육신의 안목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69)

38. 풍요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선택권을 양보한 아브라함과 비견해 볼 때 인간적, 물질적 관점에 치우친 매우 불신앙적인 선택이었습니다. (69)

39.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한 사람의 기도가 당신이 기뻐하시지 않는 수십만 명의 열광하는 노래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71)

40. 성경은 땅과 인간을 일치시켜 생각합니다. 땅은 히브리말로 “에레츠“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대로 ”거민“이란느 말로 번역이 됩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의 사유에 따르면 땅과 인간은 하나입니다. (73)

41. 하나님께서는 이 위대한 일을 새벽에 행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입장에서 보면 그날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았던 자신들의 방탕한 삶의 심판날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롯에게 그 새벽은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75)

42. 성경은 새벽, 혹은 이른 아침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그날의 창조가 모두 끝난 후에 그날을 묘사하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합니다. 하루의 수많은 시간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아침이 되는 시간에 주목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이른 아침이었고,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새벽이었습니다. 만나가 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드링 여리고 성이 무너짐을 믿으며 성을 돈 것도 홍해가 갈라진 것도 역시 새벽이었습니다. (75)

43. 새벽의 위대한 의미는 새벽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로 바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76)

44. 성경에 나타난 둘 사이의 분명한 차이는 천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롯과 천사들은 대화를 나누고 만남을 가졌으나, 소돔 성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 천사들을 욕보이고 희롱코자 하였습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특별한 사자들이었으며, 롯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이들과 교통하였습니다. (78)

45. 하나님과의 교통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시련이 은혜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78)

46. 시련과 고난이 크고 작음은 신앙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47. 롯은 하나님과 교통한 사람으로 특별히 그는 그 역사적인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날 새벽에 하나님과 교통한 사람입니다. (79)

48. 이 세상에는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여러분은 아직 인생을 너무나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으로 몰고 갈 수는 없습니다. (79)

49. 여러분, 롯은 아브라함처럼 신령한 영향력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사실은 우리처럼 세속적이 세상들에 집착하고 육신의 안목에 끌려 그릇된 결정을 하기도 하는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80)

50. 그동안 안일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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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취생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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