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전우용 페이스북

건강과시사2019. 1. 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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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중소기업 사장 한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사업가가 직원 급여를 지출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보통의 한국 사업가들은 그러지 않는다며 분개했습니다. 월급쟁이가 제 때 월급을 못 받으면 식구들까지 손가락 빨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사업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기 직원들을 그런 지경에 몰아넣을 수 있느냐고. 그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자조(自嘲)했습니다.


‘인건비’는 ‘물건비’에 상대되는 말입니다. 20여 년 전과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만, 기업인이든 언론인이든 인건비를 물건비보다 후순위로 취급하는 태도는 여전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보다 물건이 먼저다’라는 철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셈이죠. ‘물건비’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인건비’ 오르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게 시대의 ‘상식’처럼 돼 버렸습니다. 심지어 ‘인건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경제생활 영역에 적용하면, ‘인건비가 먼저다’와 ‘인건비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책정돼야 한다’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사람의 삶이 곧 경제입니다.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은, ‘사람의 삶이 무너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인간 이하의 생존 조건에 묶어 두는 것이야말로, 경제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가 가장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이는 사람보다 물건을 앞세웠던 ‘물건적 철학’을 ‘인간적 철학’으로 바꾸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한국 국민 1인당 평균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30평 대 강남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억 원에 육박합니다. 그런 나라에 살면서 고용조차 불안한 사람들의 시급 8350원도 ‘너무 비싸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1년 동안 자기 아파트값이 2억이 올랐네 3억이 올랐네 자랑하면서 한 달에 고작 1~2천원 더 내기 싫어 경비원들을 해고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우리 사회 최대의 문제가 ’양극화‘라고 생각하면서, 막상 그 양극화를 완화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하는 건, 자기 '인간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양극화가 심해져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건 역사의 철칙에 가깝지만,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져서 나라가 혼란에 빠지거나 무너진 적은 없습니다.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241676096506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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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취생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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