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7분 드라마

시사2017. 8. 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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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동안 훈련을 하면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엉덩방아를 찧었고,
얼음판 위에 주저앉아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스케이터로 살아가면서 또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 그 뒤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일곱 살, 빨간 스케이트화를 신었던 그날이 내 운명의 날이 될 줄이야.
나는 줄곧 우연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라고 해야 하나?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 작은 우연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으로 만드는 과정은
무수한 고통과 눈물방울들을 모아
등수를 매길 수 없는 트로피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아무도 줄 수 없는, 내가 나에게 주는 상.
나는 아직 그 상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꿈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나를
단련해왔는지를 떠올려보면 매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도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많은 사람이 그걸 증명한다.
‘최고’와 ‘완벽’에의 도전.
하지만 늘 성공율 100퍼센트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니까
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늘 완벽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완벽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냐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한번 더 도전해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훈련을 하다 보면 늘 한계가 온다.
근육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 속에서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이 정도면 됐어’ ‘다음에 하자’ ‘충분해’ 하는 속삭임이 들린다.
이런 유혹에 문득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을 끓지 않는다고 한다.
물을 끓이는 건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바로 그 1분을 참아내는 것이다.
이 순간을 넘어야 그 다음 문이 열린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내 기대치를 낮추고 싶기도 했고,
다가온 기회를 모른 척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건 꼭 해야 하는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 탓도 있었지만,
그 차이를 일찍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99도와 100도의 차이.
늘 열심히 해도 마지막 1도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면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그것은 물이 끓느냐 끓지 않느냐 하는 아주 큰 차이다.
열심히 노력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포기해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기는 싫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건, 마지막 1분 그 한계의 순간이 아닐까.

올림픽 정말 중요한 대회다.
어릴 적부터 꿈꾸어 왔고 지금도 계속 꿈꾸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승자가 내가 아니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나를 더 편안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사실 상상했던 것 보다 아주 많이 겁이 나지는 않는다.
매번 가지고 있던 적당한 긴장감과 자신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결과가 어떻든 나 스스로한테
실망하지도 않고 후회할 일도 없지 않을까.
내 인생은 올림픽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스무 살이고, 나에게는 더 큰 미래가 있으니까,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난 점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점을 돌파하고, 신기록을 세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점수와 기록 경신에 쏠리자 나까지 덩달아 초심을 잃고 점수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점수가 몇 점이 됐든 '점수에 신경 쓰는 경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
점수는 별 의미가 없다. 피겨는 기록경기가 아니니까.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 우습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서 무덤덤한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가 아무리 나를 흔들어댄다 해도 난 머리카락 한올도 흔들리지 않을테다.
김연아, 파이팅!



- 김연아의 7분 드라마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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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취생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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